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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조선이 겪은 치욕의 기록

by 하마메리스 2022. 5. 23.

2018년 10월 3일 개봉

 

 

작가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만든 황동혁 감독의 블록버스터 사극이다. 때는 15세기 조선, 인조 시대를 다루고 있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의 굴욕을 맞이하기까지 47일간 남한산성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원작처럼 허무주의적 색채가 짙으면서, 높은 수준의 고증으로 치욕의 역사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작품은 제54회 백상 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영화부문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작품 줄거리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이다.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에 청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상황이다. 신하들의 의견 또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금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 과 청의 치욕스러운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 그리고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무능력하고 아집이 센 '김류'가 그들이다. 그 사이에서 인조는 깊은 번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진다.   

 

 

주요 인물

최명길 역할의 이병헌

 

광해군의 중립외교, 양면 화친(명과의 사대를 저버리는 일)을 비판하는 인조반정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 인물이다. 그러나 정묘호란, 병자호란 당시에는 주화파의 선두주자였다. 척화파들이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인조의 국서에 스스로를 '신(臣)'이라 일컫는 부분 등 항복 형식과 관련되어 열을 올리는 사이,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 모든 오명과 비방을 무릅쓰고 청나라와의 협상을 조금이라도 조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평소 오랑캐라고 부르던 청나라에게 인조가 무릎을 꿇더라도 최대한 비극적인 면모를 보이지 않게 동분서주하였다. 

 

김상헌 역할의 김윤석

 

인조 정권 초기에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김상헌은 청나라와의 외교에서 타협을 거부하는 강경파였으며 최명길과는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청 태종 숭낙제가 내린 글에 대해서 김상헌은 이것을 병사들에게 보여주게 하여 전투 의지를 격양시켜보자라고 하자, 최명길이 와신상담도 살아남아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성을 나가 항복을 하면 나라가 보존된 예가 없었다라며 최후까지 항복을 반대한 인물이다. 

 

인조 역할의 박해일

 

조선 왕조의 네 번째 반정인 인조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삼촌 광해군과 지지세력인 북인 일파를 축출하여 왕위에 오른다. 아버지는 선조와 후궁 인빈 김 씨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이다. 장남으로 태어나 능양군으로 책봉된다. 광해군에 의해 동생 능창군의 억울하게 죽자, 마음으로부터 칼을 갈고 있던 인물이다. 그러나 왕이 될 생각만 하였지, 군왕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탓으로 무능력하고 국가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비전 자체가 없었다. 그가 왕이 되자 두 번의 호란을 겪은 후 국격은 떨어지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서날쇠 역할의 고수

 

서날쇠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은 인조를 남한 산성까지 업어다 준 대장장이 서흔남으로 추측된다. 서흔남은 입성해서도 전령으로 적진을 누비며 목숨을 걸고 맹활약했고 전투에도 참여하여 청군 3명을 죽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때의 공로로 천민에서 양인으로 신분이 면천되었다. 인조가 보답으로 왕이 입는 곤룡포를 그에게 하사하였고, 그는 죽을 때 이 곤룡포를 자신과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원작과 다른 점

  • 나루가 뱃사공의 딸에서 손녀로 바뀌어다. 나루의 나이도 다른데 영화에서는 아직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지만 원작에서는 열 살 소녀로 나온다
  • 서날쇠의 설정도 바뀌었다. 그는 피난을 보냈을뿐 아내도 있고 두 아들이 있는 멀쩡한 가장이다. 영화에서는 아내와 갓난 딸을 정묘호란 때 잃고 남한산성으로 피난 온 인물로 바뀌었다. 대신 칠복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설정되었다. 
  • 원작에서는 서날쇠란 인물은 가장 여유가 있었다. 쓸만한 견본이 없어 만들어 보지 못한 조총을 제외하고 화약과 농기구 그리고 무기 등을 두루 잘 만드는 장인이다. 먹고살만한 땅도 충분했으며 아내와 두 아들이 멀쩡히 존재하고 있는 가장으로 나온다. 기술자 우대로 포위된 성 안에서 제법 대우도 받고 대범한 천성 때문에 윗분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긴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 최명길과 용골대와의 접선에서 용골대가 최명길을 다소 하대하고 비웃는 태도였지만, 영화에서처럼 초반에 대뜸 화살비를 쏟아붓거나 코앞에 쇠뇌를 겨누는 고압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 서날쇠가 나루를 맡는 시점이 원작과 다르다. 
  • 영의정 김류가 원작 이상으로 찌질하게 묘사되었다. 원작에서의 김류는 일견 답답해 보이지만, 죽거나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킬 건 지키면서 나가고자 하는 인물이었다. 현실에서는 마냥 비난만 할 수 없는 인물이자 나름 복잡한 속내를 가진 노회한 관료인데 영화에서는 그냥 밉상으로 표현된다. 
  • 황동혁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영화 속 김류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음울한 영화의 분위기를 풀어주는 개그 담당이기도 하다. 헛소리 하다가 옆에서 태클 당하는 장면이 여럿 있는데, 그때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인조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최명길의 목을 치라는 상소가 빗발치고 있다고 나섰더니 그 인조가 영의정의 목을 치라는 상소도 있었다는 한 마디에 놀라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또, 최명길이 오랑캐의 힘을 너무 과장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였더니 인조는 그를 최명길과 함께 오랑캐의 동태를 살펴오라며 사신으로 그를 적진에 보내버린다. 결국 죽을 상을 하면서 청군 진영으로 떠밀리듯 들어가게 된다.
  • 김상헌이 항복이 결정된 후 자결한다. 이것이 원작과 실제 역사와도 다른 점이다. 영화와는 달리 그는 자살하려다 실패한다. 

 

 

총평

원작자 김훈은 시사회에서 소설로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를 영상으로 잘 표현했다면서 만족감을 표했다. 간혹 대화만 많이 해서 지루하다라는 의견도 있다. 전투신이나 포격신이 등장하는 와중에도 보면서 졸았다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다. 영화가 주로 성 안에 갇혀 굴욕적인 화친이지만 삶의 길을 가느냐, 굴욕적으로 살 바에는 죽는 것이 낫느냐는 두 가지 의견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려내는데 2시간 20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다. 원작의 건조한 상황 묘사가 오히려 상황의 비극을 묵직하게 전달하는 것에 비해 영화에서는 효율적으로 묘사하지 못해 밋밋하다는 의견이 있다. 원작이나 영화나 반전이나 자극적인 이야기, 액션신 등이 거의 없는 편이고 당시 조정의 갈등과 최명길과 김상헌의 언쟁 위주이기에 오락 요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음악과 연기, 연출 등에서 평이 전체적으로 좋은 편이다. 무기력함과 동시에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민중에게 불합리함을 강요하는 조정의 모습을 그려내어 그간 대규모 예산의 전쟁 또는 역사를 소재로 한 한국 영화에서 필수품 같았던 '국뽕'을 배제한 것은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 원작에서 드러나는 조선의 암울한 상황을 계절이나 색감으로 상당히 잘 표현했다.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성에 갇힌 채 죽어가는 조선군의 모습들과 가끔 희망이 보이다가도 금방 여지없이 짓밟히는 장면들이 더해지면서 어둡고 추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침내 청군이 대포 공격을 시작할 때는 극중 최명길이 경고했던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이 그대로 실현된다. 성 안의 민가는 물론이고 임금이 계시는 지엄한 행궁까지 공격 받아 무너지면서 박살이 나는 장면을 보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객 입장에서는 소름끼치도록 깨닫게 된다. 전투가 종료된 후의 장면들도 의도적으로 인물의 모습과 무너진 건물들을 같은 화면에 담는 연출로 처절함과 암울함을 묘사하였다. 영화의 시점 역시도 조선 측과 청 측을 모두 비추기 보다는, 철저하게 남한산성에 갇혀 있는 조선인들 위주로 극을 진행하여 마치 관객들 여기도 함께 남한산성에 갇혀서 압박받고 고민하게 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개인적으로도 국뽕없이 담담하게 치욕의 역사를 그려내는 뚝심있는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남한산성, 조선이 겪은 치욕의 기록같은 영화다.